부산일보 - 닮은 듯 다른 산사 옆 서원… 경북 영주 겨울 여행

관리자 2022.01.21 09:45 조회 442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왼쪽)과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 입구의 경렴정.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왼쪽)과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 입구의 경렴정.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야 하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3시간 30분을 훌쩍 넘긴다. 그래도 꼭 가봐야 할 가치를 가진 곳이다. 깊은 역사를 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두 곳을 하룻만에 둘러볼 수 있는 지역은 찾기 쉽지 않다. ‘선비의 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묵직한 전통의 분위기가 흘러 넘치는 경북 영주의 향기를 맡으러 단걸음에 달려갔다.


꽁꽁 언 날에도 부석사 경내엔 햇살이 가득

넘쳐나는 것 없이 단아한 사찰서 절로 평온

무량수전 앞 안양루서 바라보는 풍경 ‘압권’

한국적 서원 특징 가장 잘 구현한 소수서원

서원 입구 소나무 숲·둘레길서 느긋한 산보

가운데 중정 설치한 선비촌 건축 양식 독특

(위쪽부터) 부석사 일주문과 안양루, 아래쪽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

(위쪽부터) 부석사 일주문과 안양루, 아래쪽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

■부석사

매우 쌀쌀한 겨울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들판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자동차 계기판 온도계는 영하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떻게 밖에 나갈까. 걱정은 사람보다 먼저 차 밖에서 두 발을 동동거리며 떨고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부석사 경내에는 따스한 햇살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차가운 바람은 감히 절 안으로 들어올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천왕문 입구까지만 해도 여행객의 허리를 꼭 붙들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던 녀석이 먼 하늘 위에서 시샘하는 눈길을 흘기며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봉황산 산자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은 부석사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시대이던 676년에 창건했다고 하니 정확히 따지면 천년 하고도 500년 더 가까이 되는 셈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주제로 다른 여러 사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여행 삼아 다녀본 많은 절들이 어울리지 않게 현대적인 가람을 신축하는 바람에 전체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장면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부석사는 이런 곳과는 달리 화려하거나 넘쳐나는 것 없이 단아하고 소박한 절이다. 각종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절 아래와는 달리 일주문부터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회전문을 지나자 쌍탑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나타나고 그 뒤로 범종루가 우뚝 서 있다. 절로 들어오는 외지인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산 아래로 내려온 상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다.

범종루를 지나고 다시 안양루 아래를 지나가면 많은 사람이 부석사를 찾는 이유가 나타난다. 바로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이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유고를 묶어 펴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 덕분에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로 손꼽히는 가람이다. 건축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모자람 없는 균형과 충분하게 절제된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다. 배흘림기둥은 중간 부분의 직경을 크게 하고 위 아래로 갈수록 점차 줄여 만든 기둥이다. 고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볼 수 있는 기둥 양식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기법이다.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이미 서쪽으로 많이 기운 해에서 퍼져 나오는 밝은 기운은 사찰 안팎을 고루 비추며 정신적 고요와 평온의 분위기를 한껏 높이고 있다. 고 최순우 전 관장은 안양루에 올라가 경치를 즐겼다고 하는데, 누각 출입은 지금은 금지된 상태다. 아쉽더라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나 안양루 기둥에 기대서서 절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위쪽부터)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 선비촌의 초가집과 마을 전경.

(위쪽부터)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 선비촌의 초가집과 마을 전경.

■ 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1542년 고려말 학자였던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후 8년 후에 퇴계 이황이 나라에 건의한 덕분에 ‘사액’을 받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났다. 사액이란 임금이 서원, 사당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하사하는 것을 말한다.

소수서원은 2019년 안동 도산서원 등 8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관심을 끈 곳이다. 중국에서는 서원이 대개 마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산수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곳이라야 심신을 제대로 수련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소수서원은 이러한 한국적 서원의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원 앞으로는 죽계천이 흐르고 서원 어디에서나 연화산을 바라볼 수 있다. 하루종일 눈이 푸르렀으니 마음도 푸르러지게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소수서원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소나무 숲과 서원 주변에 마련된 둘레길 덕분에 여행객들의 관심을 모은다. 학자수림으로 불리는 숲에는 수령이 300~1000년에 이르는 소나무를 포함해 적송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다.

소수서원 입구 매표소 앞의 당간지주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둘레길을 둘러볼 수 있다. 돌다리를 건너면 이황이 건설했다는 취한대와 주세붕이 ‘백운동’ ‘경’이라는 글자를 새긴 경자바위가 나타난다. 다시 오솔길을 걸어 광풍정과 광풍대를 지나면 소수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선비촌으로 직행할 수 있다.

영주는 과거 유명한 선비를 많이 배출한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처음 소개한 안향 선생은 물론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출신지였다. 선비촌을 만든 배경에는 이런 역사가 깔려 있다.

2000년 문을 연 선비촌에는 기와집, 초가집 등 건물 30채가 만들어져 있다. 날씨가 추운 북부지역답게 집들은 남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추위를 막을 수 있게 사방을 건물로 에워싸고 가운데 부분에 중정을 설치한 양식이다. 대문만 막으면 어디에서도 바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