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도동서원의 녹턴

관리자 2021.09.13 15:40 조회 371

독특한 기단과 책장같은 뒷벽의 무늬.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빗소리클래식이라고 제목을 붙여 비 오는 오후에 친구가 배달한 음악이다. 피아노 소리에 빗소리를 더한 앙상블이 듣기 좋아, 해질무렵부터 틀어놓았더니 두 시간이 후룩 지났다.

빗소리 듣기에 좋은 곳을 다녀왔다. 대구의 도동서원이다. 조선의 성리학자 김굉필을 기리는 곳으로 건축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특히 중정당의 기단이 압권이다. 돌의 크기와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라 마치 몬드리안이 무채색으로 무늬 꾸미기를 기단에 그려 놓은 듯하다. 멋진 그림에 취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우산을 가져간 터라 얼른 폈다.

해설사는 비가 흠뻑 내린 날에 기단이 최고로 아름답다며 오늘 잘 왔다고 신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무늬를 만든 것은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들이다. 각자의 고향에서부터 돌을 짊어지고 와 스승을 추모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단을 올렸다. 다른 서원이 똑같은 크기로 반듯하게 쌓은 것과 달리 크기가 다른 돌을 깎아 맞추며 빈틈없이 쌓다 보니 최대 12각인 돌도 있다고 해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았다. 돌을 줄눈을 맞추지 아니하고 불규칙하게 쌓는 허튼층쌓기를 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돌에 빗물이 스며들며 색이 더 짙어졌다. 빗소리클래식을 듣기 좋은 날이다.

기단에는 용머리 네 개가 있는데 이는 과거에 급제해 등용하라는 의미와 물을 상징해 목조 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단 위 강당의 기둥은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둥그렇다. 나무는 금강송으로 배에 싣고 낙동강을 통해 들여왔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 위쪽엔 흰색 띠를 둘렀다. 이것을 상지라고 하는데, 멀리서도 이곳이 성인을 모신 서원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상지를 두른 곳은 전국에서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김굉필이 유학자 중에 젤 위, 조선 5현의 젤 앞자리 ‘수현’이란 뜻이다.

수현을 모시는 서원이라서인지 도동서원은 담장도 특별하다. 환주문을 끼고 나지막하게 쌓은 흙담에도 빗발이 서렸다. 여느 담장에는 암기와만 넣어서 쌓는 거랑 다르게 수기와 끝의 수막새를 섞어 음과 양의 기운을 맞추었다. 덕분에 독특한 디자인이 완성됐다. 긴 시간 빗물을 머금었다 말리며 더 단단해져 수백 년의 세월을 몸에 새겨넣었다. 좋은 황토로 쌓아서 비가 오니 붉은색이 더 진해졌다. 전국 담장 중 이곳을 최초로 1963년 보물(제350호)로 지정한 이유가 충분해 보였다.


담장 말고도 건물 벽마다 무늬가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수월루가 수리 중이라 문간채로 들어가도록 길을 내었는데 흙벽에 숭숭숭 박아넣은 돌의 모양이 정겹다. 전사청과 기숙사 건물인 거인재, 거의재의 벽은 민무늬이다. 다음으로 볼거리는 마당에 서서 보면 중정당 오른쪽이 교장 선생님이 쓰신 방인데 다른 방보다 한 걸음 뒤로 달아내 책을 많이 보관했다고 한다. 뒷벽의 무늬는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장 같다. 학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서재 앞에서 찰칵, 기념사진을 남겼다.

2019년 7월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2년),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 대구 도동서원(1605년),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 이렇게 9곳이다. 이토록 어여쁜 대구 도동서원이 뽑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홉 곳 중에 오늘 도동서원을 보았으니 이제 네 곳이 남았다. 남계, 필암, 무성, 돈암서원도 곧 정복해 보고자 한다.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 나오니 주차장 마당에 400살의 품이 너른 은행나무 사이로 저녁이 내린다.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조용한 밤의 분위기를 살린 서정적인 피아노곡인 쇼팽의 녹턴을 떠올리게 한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노란 단풍이 들 때 또 오라는 선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김순희(수필가)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