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온라인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당선작
상격 : 우수상
접수번호 : CIP08290429
성명 : 양O현
제목 : 새롭게 다가온 도산서원의 품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방문해 익숙한 도산서원. 그곳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 건 지난해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였다. 왜 이곳이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게 된 걸까? 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 7월 3일의 방문수기를 풀어보려 한다.
그날은 ‘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는 세계유산축전의 개막일이었다. 봄이면 퇴계선생께서 무척 사랑하신 매화향이 가득하고, 여름이면 낙동강이 시원하게 감싸는 곳, 가을에는 서원 입구부터 붉디붉은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새하얀 눈으로 고요한 곳. 그렇게 고즈넉한 곳이 바로 그동안 본 도산서원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개막을 축하하는 동서양의 음악공연과 무대극 소리가 서원을 메웠다. 이러한 공연은 서원에서 처음이라고 하는데, 퇴계선생께서 지은 <도산십이곡> 합창이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또한 올해는 서원 창건 후 처음으로 야간개방을 하고 일반인들도 의례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퇴계선생께서는 늘 나지막한 유정문까지 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직접 손님을 맞이하셨다고 하는데, 이러한 서원의 큰 변화들이 마치 선생께서 우리에게 서원의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아 기쁘고도 감동적이다.
이날은 축전 기간 내 특별전시장도 있었지만 서원 안쪽에 자리한 옥진각을 관람하길 권하고 싶다. 옥진각은 선생께서 17살의 어린 왕 선조께 성군이 되길 바라며 지어 올린 <성학십도>를 비롯해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선생의 지행합일의 삶과 평생 소망한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도산서당이다. 훌륭한 인물의 사후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지은 일반 서원과 달리 도산서당은 퇴계선생께서 직접 짓고 머물렀다. 그 사실만으로도 수백 년을 거슬러 선생을 뵙는 것만 같다. 세 칸 반짜리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공부하고 스승을 닮아가며 바른 세상을 꿈꿨을 것이다.
도를 향해 나아가는 문, 진도문을 통과하면 강당 전교당이 보인다. 좌우에는 ‘학문은 넓히고 예의는 지키자’는 박약재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굳세고 떳떳한 마음을 갖자’는 뜻의 홍의재가 있다. 전교당에는 ‘陶山書院’ 현판이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친근하게 글자를 새긴 도산서당과 다른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이 한석봉에게 지시하여 내린 편액이고 이곳의 권위와 퇴계선생을 존숭한 임금의 마음을 담았기에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서원의 노력은 사당(상덕사)에서 절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퇴계선생의 위패가 있는 이곳은 그동안 일반인에게는 굳게 닫힌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의례체험(알묘)을 원하는 사람들은 도산서원 참 알기 해설 도우미들에게 신청하면 해설과 함께 체험해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서원에서 꼭 알려주고 싶은 곳은 시사단이다. 마당 앞 낙동강 한가운데 단을 높이 쌓아두고 그 위에는 작은 건물이 있다. 이날도 신기하고 멋진 경관에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퇴계선생 사후 222년 뒤 정조의 탕평책의 하나로 특별과거시험을 서원에서 치른 것을 기념한 것인데 정조의 퇴계선생을 향한 존경이 담겨 있어 인상 깊다. 200여 년 전 인물의 어떤 점이 그리 존경스러웠을까? 아마도 그것은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위해 평생 학문을 닦고 만인에게 낮춤과 배려, 예의와 청렴을 실천한 퇴계선생의 아름다운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점이 수백 년이 흐른 현대에 세계인에게 인정받은 한국 서원들의 참 가치라 생각된다.
인격적 지도자가 될 참 선비를 길러내던 우리네 서원은 그 목표가 분명했다. 바로 도덕입국. 이를 위해 수백 년 동안 역사로, 문화로, 삶의 일부로 이어온 가치를 세계인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 있던 퇴계선생과 도산서원이 ‘고지식하고 따분한 옛날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현대의 우리에게도 ‘사람다움’을 생각해보게 하는 곳이 되길 기대하며, 오늘도 열려있는 서원의 품으로 많은 이들이 안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