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온라인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당선작
상격 : 우수상
접수번호 : CIP08160122
성명 : 문O찬
제목 : 서원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서원은 볼거리가 없다. 내가 처음 소수서원을 방문했을 때의 감상은 한마디로 ‘참 볼거리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소수서원을 비롯한 여러 서원을 방문했을 때 나와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원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도 아직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의 서원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서원을 직접 방문해 본 사람들에게조차도 의아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문화재의 가치를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에 두고는 한다. 물론 이러한 척도들도 문화유산의 가치를 측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이러한 척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해당 문화재가 가지는 의미와 이 문화재를 만들고 이용한 당시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 이념이자 조선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였다. 마치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리학을 이해하고 그 의미와 뜻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선비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성리학을 공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향교나 성균관과 같은 관학만으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한 환경속에서 조선시대에는 자연스럽게 사학인 서원이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선비들은 서원에서 왜 성리학을 공부하였을까?
유교에서 발달한 성리학은 우주의 기본원리와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이었고, 이 법칙을 통해 인간의 심성, 실생활 윤리, 치도의 방법, 군신간의 도리를 도출해내는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학문이었다. 선비들은 만물과 인간세계의 법칙 그리고 정치원리를 탐구하고 상호 논의하고, 현실세계의 정치를 성리학적 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며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서양의 철학자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철인이 다스리는 사회라고 말하였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이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으며, 그 철인이 바로 선비였고, 이 선비들이 성리학이라는 철학을 공부하는 장소가 바로 서원이었다.
또한 서원은 단순히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이 등 존경스러운 선현을 제사 지내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서원에서 선현을 제사지내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예를 넘어 선현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자신들도 선현들이 남긴 발자취를 좇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원은 풍류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서원은 경치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서해 유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절경이나 소수서원 앞에서 흐르는 강, 가을에 노란빛을 맘껏 뽐내는 도동서원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고 있자면 절로 시상이 떠오르곤 한다. 선비들은 이러한 서원에서 아름다우 자연을 보며 시도 짓고 풍류를 즐기며 자신의 심성을 갈고 닦았다. 서원의 배치와 구조도 자연과 결코 이질적이지 않게 어우러져 자연속에서 학문을 연마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뜬 마음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풍습, 문화, 음식에 대해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기전 미리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가면 좀더 역사적·문화적 맥락속에서 그곳의 문화를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서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서원이 웅장함이나 거대함, 화려함은 없지만 이러한 조선시대 정신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서원을 방문한다면 무심코 지나쳤던 서원의 배치, 나무 한그루, 물소리에서 조차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문화가 형상화 되어잇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서원이다. 서원을 방문하여 이러한 것들을 느낀다면 이것이 바로 유면한 역사학자 E.H카가 이야기 했던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할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