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온라인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당선작
상격 : 우수상
접수번호 : CIP08310680
성명 : 김O진
제목 : 삼대가 찾은 위대한 유산
어린 시절 나는 동네 훈장님이자 한학자였던 할아버지께 한자와 예를 배웠다. 할아버지는 종종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인근 지역에 위치한 돈암서원에 다니곤 했다. 돈암서원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우리 현실에 맞게 보급한 사계 김장생 선생을 기린 곳이라고 할아버지께 배웠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나에게 돈암서원은 살아있는 예학과 예의 전당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돈암서원에 갈 때면 늘 서원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서원을 아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생각이 날 때면 고향에 내려가 돈암서원을 찾곤 한다.
얼마 전 나는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돈암서원을 방문했다. 그 옛날 내 손을 잡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던 할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또 다른 3대가 모여 돈암서원을 찾은 것이다.
어린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돈암서원에 들어가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자, 2층 누각이 웅장한 산앙루가 우리를 반겼다. 산을 우러러 보는 누각이라는 이름처럼, 태산처럼 높은 스승을 본받고자 했던 제자들의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다.
산앙루의 웅장함에 탄성을 지르던 아이들이 이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여러 질문들을 쏟아냈다. 아버지는 그 옛날 할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돈암서원에 대해 차분히 하나씩 일러준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서원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교조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서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서원의 멋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알려주려는 듯 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줄 서원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했다.
덕에 이르는 문이라는 입덕문을 지나자, 정면으로 강당인 양성당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동재인 거경재와 서재인 정의재가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양성당 바로 앞에는 서원의 내력과 김장생 선생과 그의 아들인 김집의 학덕을 기리는 원정비(문화재자료 제366호)가 서 있었다. 양성당 앞에 서 있으니, 서로를 격려하며 학업에 매진하는 제자들과 그들을 살피는 스승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당대의 시대정신이 스며든 건축물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대에게 그 이념과 정신을 생생하게 전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꼽히는 것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응도당(보물 제 1569호)이다. 유생들을 가르치던 강학 공간인 응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등 모두 15칸짜리 건물로 국내 서원의 강당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응도당 좌우측 지붕에 눈썹처마라 불리는 가첨지붕이 대어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파트와 빌딩에 익숙한 아이들은 눈썹처마가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은 후에도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서원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한국인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었다.
오래 전 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듯이, 서원은 단순히 과거의 오래된 유물이 아니다.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꿈꾸며 조각해갈 단서가 담겨 있는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다. 서원이 단순히 과거의 교육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고 조상의 숭고한 얼과 뜻이 깃든 한국의 정신문화로서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