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장려상-우리 정신의 공간, 옥산서원

관리자 2020.12.21 14:16 조회 884
한국의 서원 온라인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당선작


상격 : 장려상

접수번호 : CIP07090007
성명 : 김O준



제목 : 우리 정신의 공간, 옥산서원


유럽 여행을 하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의 흔적이었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과 시스티나 성당은 물론이고 바실리카(Basilica)라는 영예가 붙은 대성당들부터 작은 성당들까지 벽면과 천장 어디든 여백을 종교화로 채움으로써 신에게 열정을 바쳤다.

저들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계의 한가운데로 소환한 신을 앙망함으로써 고양되는 자신의 삶을. 그 고귀한 것을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성당은 중세인의 정신이 건축으로, 회화로, 조각으로, 문학적 수사로 구현된 정신의 공간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중세인의 성당 같은 공간이 있으니 바로 서원들이다. 서원은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건축으로, 글씨로, 편액으로, 주변경관으로 구체화되어 이어지는 깊은 샘 같은 공간이다.

내 고향 포항 부근인 안강에는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이 있다. 나는 이 점에 긍지를 느낀다. 내 고향 포항이 비단 쇳물과 산업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와 정신의 혼을 품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양동마을이 옛사람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면, 옥산서원은 선비정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대학시절 한국철학수업에서 배웠던 주리론의 주인공이자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분인 회재 이언적의 정신을 이 서원과 주변의 산천이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다.

옥산서원을 끼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데, 여기 바위 다섯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은 이언적이 이름 붙인 다섯 바위 중 세심대(洗心臺)에 위치한다. 자연을 벗 삼아 깨끗한 물로 마음을 씻고 오로지 학문에 힘 쏟는다는 의미인 듯싶다. 나는 그 흐르는 냇물을 지긋이 바라보며 지자요수(知者樂水)’라는 말이 떠올라 빙그레 웃곤 했다.

서원의 정문에 해당하는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며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의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떠올렸다. 우리 정신의 차원 높은 경지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게 아닌가. 고궁이든 서원이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반드시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문을 통과할 때마다 선현의 정신을 저런 방식으로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행실을 점검하여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다시 무변루를 통과하면 강당(講堂)인 구인당(求仁堂)과 동재 및 서재가 강학공간을 이루고 있다. '구인(求仁)' 두 글자에서 이언적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이언적이 후배 선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옥산서원'이라고 적힌 두 개의 편액 중 하나는 추사(秋史)의 글씨이고, 또 하나는 아계(鵝溪) 이산해의 솜씨이며, '무변루''구인당'의 편액은 한석봉의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고는 마치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올려다볼 때처럼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 예술의 중핵이 바로 옥산서원에 총집합한 듯하여 가볍게 거닐까 싶어 찾았던 발걸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듯했다.

구인당 뒤로는 다시 체인문(體仁門)이 있고, 담 안쪽에는 체인묘(體仁廟)가 있다. ‘체인(體仁)’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하였는데, 이는 인()의 실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성리학적 지향점을 드러낸 부분 같았다. 즉 강당에서 아무리 성현의 가르침을 머리로 공부한다 한들 뒤이어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고 이언적이 되묻는 듯했다. 자신의 제자들뿐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내가 옥산서원을 어느 정도 보았는지 모르겠다. (), (), ()을 찬찬히 보아도 볼 수 있는 만큼만 보았기에 아쉬웠다. 그래서 여러 번 찾았음에도 또 찾고 싶어진다. 비단 옥산서원의 품격뿐 아니라 서원을 안고 있는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 마음을 씻어주는 옥산천의 맑은 물은 내 마음에 담긴 풍경화 같기 때문이다.

옥산서원을 뒤로 하며 걷다가 문득 서원 쪽을 바라보면 무학산(舞鶴山)과 자옥산(紫玉山)이 눈에 들어온다. 옥산천을 보며 지자요수를 떠올렸다면 이제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에 수긍하며 안강의 넓은 들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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