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서원 이야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9개 서원 소개

사림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건립된함양 남계서원(사적 제499호)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갈한 기운이 살갑게 맞이합니다.
‘어떤 곳에 서원을 세울 것인가’는 서원을 세울 때 매우 중요합니다.
‘남계서원’은 이에‘답을 하는’터에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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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주요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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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의 개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갈한 기운이 살갑게 맞이합니다.
‘어떤 곳에 서원을 세울 것인가’는 서원을 세울 때 매우 중요합니다. ‘남계서원’은 이에‘답을 하는’터에 앉아있습니다.

남계서원 전경

경남 함양에 있는‘남계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서원입니다. 정여창(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림이 뜻을 모아 1552년에 세웠습니다. 1566년 명종이 ‘남계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이 서원에 모시고 있는 정여창은, 조선 전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김종직의 가르침 속에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지리산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성리학을 파고들었습니다. 세자 시절의 연산군을 가르치기도 한 정여창은, 유학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정치인들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함경도로 유배되어 150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여창은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의 뛰어난 다섯 분의 유학자를 일컫는‘동방오현’으로 성균관 문묘에 모셔졌습니다.
  • 사우

  • 명성당

  • 풍영루

남계서원은 16세기 후반 일본의 침략에 맞선, 경남지역 의병활동의 터전이었습니다. 때문에 1595년에 일본군이 불태웠으나, 전쟁이 끝난 뒤 함양의 사림이 뜻을 모아 다시 세웠습니다. 남계천 맑은 물과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서원은, 연화산 기슭의 비탈진 터를 다져서 자리 잡았습니다. 강학공간은 앞에 두고, 제향공간은 그 뒤 높은 곳에 앉혀,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구조를 처음으로 갖추었습니다. 때문에 그 뒤에 세워지는 많은 서원들은 이를 본받게 됩니다.
서원 어귀에 있는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서 정문‘풍영루’에 오르면, 편액에 ‘사방으로 트인 전망, 넓은 들판, 감돌아 얽히듯 냇물이 흐른다. 먼 숲은 푸르고 저녁노을은 아름답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풍영루’를 지나면, 양팔 벌린 듯 동·서쪽 두 곳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그 뒤로 유생들의 기숙사인 ‘양정재’와 ‘보인재’가 누마루‘애련헌’,‘영매헌’을 각각 하나로 이어서 앉아있습니다. 서원의 강학공간에 연꽃과 매화의 향이 그윽한 연못을 가까이 두고서 아담한 유식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서원건축에서는 드문 모습입니다. 그 뒤에 ‘남계서원’ 현판이‘남계’와‘서원’으로 나뉘어 걸려있는 강당, ‘명성당’이 있습니다. 그 동쪽에 사방이 나무판으로 벽을 이룬, 책과 목판을 보관하는‘경판각’이 있습니다. ‘명성당’과 ‘경판각’ 사이로 들어가면, 가파른 계단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당’이 있습니다. 이처럼 제향공간이 강학공간 뒤 높은 곳에 엄숙하게 모셔진 것은 남계서원이 처음입니다. 사당 앞에 ‘관세대’와 ‘정료대’가 놓여있습니다. ‘관세대’는 사당에 들어가기 앞서 손 씻을 대야를 놓는 곳이고, ‘정료대’는 밤에 관솔이나 기름 등을 태워 불을 밝히던 곳입니다.
  • 연지

  • 홍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