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서원 이야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9개 서원 소개

교육 내용과 장서의 관리가 탁월한경주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옥산서원 은 1871년(고종 8년)의 서원철폐도 넘었지만, 가까이 6.25전쟁 격전지였던 ‘경주 안강전투’에 쏟아지던 포화도 피했습니다.
이로써 이 나라 출판과 장서의 중심서원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귀한 책을 온전하게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각 내용의 음성파일 안내 (아래 목록을 클릭하시면, 해당 부분의 음성파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개요(0:00)
  • 제향(4:03)
  • 강학(6:13)
  • 교류 및 유식(6:59)
  • 문화재 & 기념물(7:35)

서원의 주요기능

  • 개요
  • 제향
  • 강학
  • 교류 및 유식
  • 문화재 & 기념물

옥산서원의 개요

‘옥산서원’은 1871년(고종 8년)의 서원철폐도 넘었지만, 가까이 6.25전쟁 격전지였던 ‘경주 안강전투’에 쏟아지던 포화도 피했습니다.
이로써 이 나라 출판과 장서의 중심서원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귀한 책을 온전하게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옥산서원 전경

옥산서원은 1572년 경주지역 사림들이 이언적(1491~1553)의 깊은 학문과 올곧은 실천을 기리고자 세웠습니다. 이듬해 1573년 선조 때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서쪽으로 앉아있는 옥산서원은, 화개산(동), 자옥산(서), 도덕산(북)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 트여있습니다. 앞에 흐르는 자계천의 너럭바위 ‘세심대’는 이황의 글씨로‘맑은 물에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정조는 이언적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초시’를 치렀다고 합니다.
정문인 ‘역락문’에 들어서서 ‘무변루’로 가려면 좁은 도랑을 건너야 합니다. 자계천의 상류에서 서원의 북쪽 담장 아래로 끌어들인 물길입니다. 이 도랑을 건너면 유식공간인 ‘무변루’. 한국의 서원 가운데 맨 처음으로 지은 누마루 건축물입니다. ‘무변루’아래로 들어가 돌계단을 딛고 오르면, ‘무변루’와 ‘구인당’ 사이에 기숙사인 동·서재가 마주보며 정사각형의 강학공간을 이룹니다. 팔작지붕아래 앞면 5칸 옆면 2칸의 ‘구인당’은, 바른층 쌓기의 돌 기단 위에 앉아있습니다.
강당인 ‘구인당’에서는 돋보이는 명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마아래 ‘옥산서원’은 추사 김정희가 썼습니다. 대청마루에 걸린 또 하나의 ‘옥산서원’은 문신이자 명필로 알려진 아계 이산해의 글씨입니다. 마루 안쪽의 ‘구인당’은 ‘무변루’와 함께 한석봉이 썼습니다.
  • 체인묘

  • 구인당

  • 무변루

‘구인당’ 뒤에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체인묘’가 있습니다. ‘체인(體仁)’은 ‘어질고 착한 마음을 실천에 옮긴다’라는 뜻으로, 이언적이 주장한 실천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 등과 함께 ‘동방오현’으로, 조선도학의 어른으로 받들어졌습니다.
  • 세심대

  • 세심대 경관

한편 옥산서원에서 서북으로 자계천을 따라 700m쯤 가면 보물 제413호‘독락당’입니다.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홀로 자연과 벗하며 책 읽던’ 공간입니다. 이언적은 ‘징심대’에서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탁영대’에서 갓끈을 물에 씻으며 세속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관어대’에서는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며 ‘자유’를 생각하고, ‘영귀대’에서는 맑은 바람을 쐬며 시가를 노래하고, ‘세심대’에서는 마음의 때를 씻어내며 몸과 마음을 닦았는지도 모릅니다.
흙담으로 둘러싸여 바깥으로 나가는 눈길이 갇힌 ‘독락당’에서는 사랑방에 앉아 뒤쪽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계곡 쪽 담장의 네모난 살창으로 맑고 깨끗한 계곡의 기운이 스며듭니다.

옥산서원은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과 ‘한국의 서원’(2019년)으로 세계유산 2관왕입니다.

옥산서원의 제향

옥산서원의 춘추향사는 새벽 1시쯤에 시작됩니다. 향사에 들어가기 전에 제관들에게 ‘야하’라는 미음간식을 제공합니다. 허기가 심할 때 나는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제물로 삼은 동물을 나무시렁에 실어, 누각인 무변루와 강당, 사당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사다리를 놓고 중문을 통해 옮기는 것도 독특합니다.
해마다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체인묘

  • 전사청

제향 인물

이 서원에 모셔진 이언적은 존재론·우주론 등을 파고든 성리학자였습니다. 왕실에서 성리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언적의 학문은 이황으로 이어집니다. 뒷날 평안도 강계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구인록’,‘대학장구보유’,‘중용구경연의’ 등 많은 책을 지었습니다. 이언적은 도덕적 이상 국가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임금에게 ‘바른 소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상소문은 1538년 중종에게 올린, 나라를 다스리는 열 가지 원칙 ‘일강십목소’입니다. 임금이 ‘집안 단속을 잘하고’, ‘세자를 바르게 키우고’, ‘민심을 바로 받아들이고’, ‘사치와 욕심을 경계하고’, ‘나라를 잘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등 열 가지 입니다. 이를 받아본 중종은 “늘 곁에 두고 지킬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유교 이념에서 벗어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연명상소인 ‘만인소’에는 8,849명의 사림이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 만인소는 지금도 옥산서원에 남아있습니다.

옥산서원의 강학

옥산서원에 있는 서원 입학 규정, 교육평가 내용과 관련된 고문서를 통해, 옥산서원의 강학방식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옥산서원에는 원생 선발과정과 평가에 대한 자료가 잘 남아있습니다. 이 자료에는 추천 유생의 명단과 추천자의 명단이 적혀있는데, 봄·가을과 각종 모임이 있을 때마다 추천했습니다. 평가 자료인 ‘강지’는 원생 시험의 성적기록부로서, 시험과목에 따라 성적을 4등급으로 나누고 평가자가 서명합니다.
  • 구인당

  • 민구재

  • 경각

구인당

옥산서원의 교류 및 유식

유식공간 ‘무변루’의 본디 이름은 ‘납청루’였습니다. ‘이 누에 오르면 좋은 기운을 받아 도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자옥산 쪽으로 판문을 열면, 푸른 계곡과 짙은 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유생들은 이렇듯 청정한 자연 속에서 한마음 되어, 선현의 학문과 청빈, 푸른 기개를 토론하고 되새겨가며 본받았습니다.
  • 무변루

  • 세심대 주변 경관

문화재 & 기념물

  • 삼국사기(국보 제322-1호)

임금으로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서적을 내려받았습니다. 서원의 책을 서원 밖으로 내보내지 않도록 엄격하게 지켜 6천여 점의 고문서와 유물을 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50권 9책 완질본은 보물 제525호입니다. 이언적의 ‘수필고본’이 보물 제586호, 1513년 간행된 활자본 ‘정덕계유사마방목’이 보물 제524호, ‘해동명적’ 2책이 보물 제5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