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오늘의 길목]한국 절의정신의 메카, 무성서원

관리자 2021.09.24 13:00 조회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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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대(전북도청 학예연구관, 한국실학학회 이사)

경상북도 안동의 슬로건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다. ‘유교문화 중심지, 양반 고장의 본향’이라는 지역민들의 자부심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어로 사뭇 진지함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전라북도의 정체성이 담긴 중요한 정신적 가치 자산은 무엇일까. 필자는 ‘절의(節義)’라는 두마디 단어로 함축하고 싶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내걸고 행동에 나섰던 수많은 애국충신들, 올바른 시대의식을 향유하며 꿋꿋한 신념과 마땅한 도리로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지켰던 문무 관료, 지식인, 의병, 농민 등이 가졌던 시대정신을 말한다. 특히, 그 중심에 태인현 무성서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무성서원은 한국 유불선 사상의 태두인 고운 최치원을 배향하며, 그가 태산군수로 부임해 개혁과 교화의 방점을 남겼던 가장 핵심적인 중심무대였다. 아울러 무성서원은 이후 이 곳에 추가 배향된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의 인물들에서 교화와 풍류, 절의와 기개 등 한국문화의 원형이자 절의정신의 본질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무성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와 함께 최치원 정신을 기반으로 1475년 정극인의 고현향약(보물 제1181호), 1592년 임진왜란의 창의(倡義), 1906년 최익현의 병오창의 등이 깊이 조망된다.

「1872년 태인현지도」에는 고현면(古縣面, 현재 칠보면) 원촌(院村)에 무성서원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서원 주변에 시산(詩山), 송산(松山)과 최치원과 관련된 유상대(流觴臺) 유적도 확인된다. 아울러 이 고현내 일원은 용계서원, 필양사(춘우정 김영상 순절 배향), 성황산의 한정, 송정, 송산사, 시산사, 후송정, 정극인 묘소, 김후진 묘비, 김회련 조선개국공신 녹권 및 왕지(보물 제437·438호)를 보관한 도봉사,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유허비, 병오창의기적비, 하청사터, 남천사, 무성리석불, 무성리 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칠광도(七狂圖), 송정수계지도(松亭修契之圖), 불우헌집, 임계기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5호), 태인 방각본(坊刻本) 등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재가 즐비한 역사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또한 인근 태인면 태성리 지역의 옛 태인현 치소에는 최치원이 처음 세웠다고 전하는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인 피향정(보물 제 289호), ‘청녕헌(淸寧軒)’ 당호가 선명한 태인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고향(대각교 설화)과 연관된 태인향교 만화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신잠 선생 영상(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4호), 신잠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5호), 시정(詩亭, 현 읍원정) 등의 문화유산들이 선명하다.

절의정신의 상징 공간이 무성서원이라면, 절의정신의 상징 인물은 일재 이항(一齋 李恒, 1499~1576)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대학자 일재 선생의 무게는 크다. 이항은 그가 살았던 태인현 뿐만 아니라 전라도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그는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이나 남명 조식에 못지 않는 학문적, 정치적 위상이 있는 인물로 ‘호남의 큰 스승(師表)’으로 추숭되어 왔다. 퇴계 이황은 그를 ‘호남 이학(理學)의 창(倡)’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그의 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