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자율성 토대로 대학도 문화발전 기여할 수 있어”

관리자 2021.02.09 14:51 조회 348

‘국내 대표’ 여성리더, 역사 통해 긍정의 마음가짐 배워
‘수양’ 중심 서원 교육, 인성교육, 우리문화 교육 가능
여성의 사회 진출 비중 커진 시대, 서로 연대할 기회 만들어야
‘낭만’ 사라진 대학, 자율성 부여해 문화 발전 기여토록 해야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한국 서원 9곳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 한명섭 기자)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한국 서원 9곳의 유네스코 등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외우는 걸 잘했었죠. 기억력이 좋았는지 책을 보면 잘 외워졌는데 그게 다 공부였다고 봐요. 어렸을 적에도 역사책을 읽고 나면 꼭 할머니께 이야기해드렸어요. 할머니께서는 제 이야기를 듣고 늘 칭찬해 주셨죠. 학창시절 선생님들도 역사학자의 꿈을 심어줬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에게 ‘역사’란 그렇게 스며들었다. 

이 이사장은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데 있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당시 9개 서원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 기준을 충족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유산 지정에 담긴 의미는 문화강국으로서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는 말과 같다. 이 이사장은 이러한 공로로 지난해 10월 도산서원 향사(서원 제사)에서 첫 잔을 올리는 역할을 수행하며, 600년 서원 역사 최초의 여성 초헌관이 됐다. 이 이사장 자체가 또 다른 ‘역사’가 된 것이다.

이 이사장은 역사학자이자 여성리더로 역사교육과 한국문화 보존 분야에서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본지는 이 이사장에게 품격 있는 국가발전을 이룩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교육을 이끌어나가고 역사관을 형성해야할지 물었다. 더불어 한국의 대표 여성리더로 지내온 소회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입춘까지 지나며 완전히 ‘소띠 해’에 진입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특별히 개인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신 이때까지 해왔던 ‘문화의 세계화’를 좀 더 박진감 있게 진행하려 한다.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등의 일들을 해왔지만, 앞으로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복·한옥·한지와 종가 문화 등 우리문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유·무형의 유산들을 유네스코에 등재해보고자 한다. 여러 방면으로 한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 역사적으로 서원이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대거 철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 철폐됐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서원은 일종의 사립명문 고등교육 기관에 속한다. 서원의 원류는 인성교육에 기반한다. 입신이나 출세보다는 수양에 덕목을 둔 것이다. 서원은 1543년 백운동서원을 시작으로 1550년 명종 때 처음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의 사액을 받았다. ‘사액을 받는다’라는 말은 조정으로부터 공적인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됐다는 의미다.

서원은 16~18세기에 걸쳐 670곳 넘게 세워지며 세를 키웠다. 하지만, 지방 세력화와 여론 집단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흥선대원군에 의해 대부분이 철폐되고 47곳만 보존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상당수가 파괴되기도 했다. 원형이 보존된 9곳만 유네스코 후보에 올릴 수 있었다.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뒤 2015년 한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2019년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 결국 등재되는 데 성공했다.”  

- 열정이 대단하다. 서원이 ‘금녀의 구역’인데도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1965년 이화여대 사학과에 입학해 영주의 소수서원과 부석사로 답사를 갔다. 상당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격조 있는 서원의 모습을 보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많은 서원을 찾아다녔다. 세월이 지나 이화여대 총장을 마치고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지내며 우리 문화를 세계화해보자는 의지를 구체화했다. 그 시작이 서원이었다.”

- 이런 열정 때문에 ‘금녀의 구역’이 열린 셈이다.
“서원 뿐 아니라 전통시대에 여성들은 공적교육기회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서원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여성을 찾을 수 있었다. 바른 교육관으로 자식을 키워 서원에 보낸 어머니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어머니들의 정신과 지혜가 지금의 서원을 보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최초의 여성 초헌관 역할을 맡으며 남녀가 균등한 상생으로 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려서부터 꿈을 실현하는 인생을 걸어온 듯하다. 어떤 인생관으로 살아왔는지.
“선택한 전공으로 한 길을 쭉 걸어올 수 있었기에 늘 감사하다. 후회는 없다. 특히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좋은 스승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평생 살아오며 지닌 인생관은 ‘안 되는 일에 집착 말고 좋아하는 일을 잘하자’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긍정의 힘을 터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자세다. 이순신 장군도 모두가 끝이라고 할 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고 말했다. 퇴계 선생은 ‘가까이 있는 단 복숭아는 거들떠보지 않고 신 똘배 찾으러 온 산천을 헤맸다’라며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선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가짐을 배웠다.”

- 여러 방면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에 앞장서고 있다. 과거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낮았지만 요즘은 꽤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기회가 생기면 여성이 상위권을 많이 차지하는 시대가 왔다. 수려한 ‘나무’처럼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비중도 커졌다. 하지만 국회의원 비율만 봐도 아직은 여성들을 더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숲’을 이루기 위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연대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어디에 몸담고 있으나 정의로움에는 한편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주인정신을 가지고, 전문성을 기르며, 겸손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이 말들의 앞 글자를 빌려 표현하자면 ‘주전자 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육아 문제다. 여성들이 지속성을 갖고 사회에서 성장하려면 육아에 대한 부담을 국가나 기업이 덜어줘야 한다. 육아 문제는 저출산 문제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양육을 보장해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본지 이인원 회장과 화상 인터뷰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 = 한명섭 기자)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본지 이인원 회장과 화상 인터뷰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 = 한명섭 기자)

- 현 제도권 교육을 보며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인성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교협 회장 시절 총장들과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던 부분이 인성교육이었다. 인성교육은 대학부터 시작하면 늦는다. 서원을 더 육성하고 세계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원을 육성하면서 도덕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인공지능(AI) 중심 시대가 된다고 해도 도덕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지금은 도덕에 목마른 시대다. 서원을 통해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도덕적 자질을 키울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 역사(국사)교육이 당쟁에 집중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국사학자들이 역사의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하고 기록해 교육 분위기를 바꿔야하지 않나.
“그런 논의는 오랫동안 있었다. 먼저 학령 시기에 맞춰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역사 속에서 멘토를 찾는 교육 즉, 인물·위인 중심의 수업, 중학교 과정에서는 우리 동네 유산을 찾아가는 등 역사문화 현장 중심의 수업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사상사·대외관계사 등을 폭넓게 이해하는 단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요즘은 지나치게 전통시대 부분이 대폭 줄어들고 근현대사 중심으로 교과서가 집필됐다. 이제라도 우리의 자긍심을 가진 역사를 골고루 가르치는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 집중하다 보니 인문계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보인다. 
“물론 과학은 중요하다. 인류의 문명사 전환은 과학이 일으킬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문학·사학·철학 같은 기본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 과학자들도 인문 소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소통과 융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인문 정신도 함께 길러야 한다. 그래야 피폐한 시대를 정신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 대학교육이 전통학문 실용화에 많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보나.
“우려스럽다. 물론 학문 활성화와 취업과 같은 여러 가지 수익적인 면을 고려한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음대나 미대가 종합 예술만 추구한다면 실기가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실기 실력이 탄탄해야 종합예술 분야에서도 탄탄한 실력이 나온다. 같이 어우러지려면 학문의 기본을 다지는 것이 필수다. 문·사·철도 저마다 학문적 기둥이 있어야 문화 콘텐츠 개발에 힘쓸 수 있다. 사극 자문도 많이 했다. 사실왜곡 없이 재미를 더해 대중적 스토리텔링으로 창작된 작품이 좋은 콘텐츠다.”

- 한류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대장금’ 같은 K-드라마, ‘BTS’ 같은 가수가 부르는 K-팝까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 고유의 것만 세계에 고집한 게 아니라서 거둔 성과 아닐까.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지낼 때도 양방향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에 우리 문화를 선보일 때 고유성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 나라마다 전통적인 체질이 다르다. 양방향 소통의 실례로 BTS의 아리랑 무대를 들 수 있다. 아리랑 선율을 현대 음악과 접목해 무대를 선보이자 세계가 열광했다. 안숙선 명창이 재즈밴드와 협연해 워싱턴 무대에 섰을 때도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우리 것을 알고 세계를 보면 소통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데 대학이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고 가능하다면 필요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문화의 접목을 시도하는 곳이 돼야 하고 창의성이 살아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서 ‘낭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 청년들은 풀이 죽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힘을 실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역사는 다 쓰러져 가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등록금이 13년 가까이 동결되기도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대학 운영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다. 대학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자유시장 속에서 발전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도태될 것은 도태될 것이다.”

■이배용 이사장은…
1969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동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강대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화여대 13대 총장(2006~2010년)을 지내면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2008~2009)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2009~2010)과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여성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밖에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장 △코피온 총재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영산대 석좌교수,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사진 = 한명섭 기자)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사진 = 한명섭 기자)

<대담=이인원 회장 / 정리=허정윤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출처 : 한국대학신문 - 409개 대학을 연결하는 '힘'(http://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