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장려상-옥산서원이 전해준 찬란한 울림

관리자 2020.12.21 13:47 조회 847
한국의 서원 온라인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당선작


상격 : 장려상

접수번호 : CHP08280349
성명 : 최O영



제목 : 옥산서원이 전해준 찬란한 울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달력을 쥔 손이 떨리고 있다. 길어진 입시생활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즈음 무작정 경주행 기차를 탔다. 경주를 찾는 걸음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옥산서원'에 들렀다. 1868, 흥선 대원군이 사원을 철폐했을 때도 헐리지 않고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장소였다.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 이렇게 온전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입시기간의 내 복잡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없이 잔잔한 옥산서원은 아직도 짙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마치 처음 마주한 것이 아닌 것처럼 옥산서원은 내 마음을 먹먹하리만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비가 그쳐야 맑아지는 것이고, 잠시 흐린 하늘은 곧 다가올 해를 맞이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문득 갑갑함을 툭툭 털어내 주던 그 바람결이 그리워졌다. 정돈된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은 헤아려 다시 옥산서원을 찾았다. 뺨을 스치며 불어온 바람이 코로나19로 인한 피로와 만나니 매우 귀하게 느껴졌다. 그곳의 경치는 비슷했지만 녹음이 우거진 숲길에는 자연의 싱그러움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자 성리학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이언적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고자 세운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 사림의 중심지로서 지역 사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무너졌으나, 복구되어 세월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과거 속 선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의 마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은 논어 중 "배워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로부터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 에서 따온 것으로, 영재를 가르치는 큰 즐거움이라는 뜻을 생생히 음미할 수 있다. 역락문을 들어서면 무변루가 앞을 가로질러 막고 떡하니 서 있다. 이 무변루의 문은 너무 낮아서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마주한 누각은 서원 외부에서 쉼 없이 흘러가는 물소리와 어우러지지 않게 회재 이언적 선생이 제자들과 학문에 몰두했던 그 시간 속에 멈춰진 듯했다. 무변루를 통과해서 들어오면 바로 강학공간으로 이어진다. 강학공간은 강당인 구인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머물며, 수학하는 동재와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중간이 막혀 누마루와 대청이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담 밖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경관을 왜 이렇게 차단하는 구조를 채택했는지 의아했다. 그리고는 흠칫 강당에 멈춰 섰다. 건물 처마에 빼곡하게 걸린 현판 글씨에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김정희가 썼다는 '옥산서원'은 처마와 기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제주도로 유배되기 직전, 53세의 추사가 당대의 정신과 가치를 투영하여 한 글자씩 심혈을 기울였을 모습이 선연했다. 대청에 앉아 학문을 토론하던 유생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들 속에 섞여 오고 가는 낭랑한 경전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청량한 여름을 벗 삼아 나는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강당 뒤편으로는 착하고 어진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의미가 있는 체인묘가 자리한다. 하지만 제례가 거행되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늘 닫혀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한 사당 왼쪽 담장에는 선생의 행적을 기록한 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후학들이 비석을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스승을 기리는 제자들의 덕과 그런 제자들을 육성해낸 선생의 훌륭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옛 명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옥산서원은 갈 수 없는 조선으로 나를 순식간에 데려다 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들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마음을 흔드는 황량한 순간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었으며, 무수한 점과 선을 이어나가는 자세는 원하는 미래를 가꿔나갈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교과서 안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옥산서원은 이제 누군가의 역사 속 공간이 아니라 내 삶 속 하나의 발자취가 되었다. 유학의 향기가 가득한 옥산서원은 오늘도 그렇게 찬란하게 울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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