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500년 한국 서원 최초로 여성이 향사서 술잔 올린다 (2020.09.21)

관리자 2020.12.28 14:36 조회 445
[단독] 500년 한국 서원 최초로 여성이 향사서 술잔 올린다

내달 1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서 추석 향사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과 이정화 동양대 교수 헌관으로 참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우리나라 서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2명이 헌관으로 참여해 퇴계 이황 선생의 뜻을 기리는 술잔을 올린다.21일 도산서원 등에 따르면 추석인 내달 1일 퇴계 이황 선생을 추모하는 경자년 추계 향사(서원의 제사)에서, 한국의 서원 9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의 주역인 이배용(전 이화여대 총장)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을 맡는다.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관에는 이동선 전 서울여대 교수, 세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관은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 신위 앞에 따로 술잔을 채워놓는 분헌관으로는 여성인 이정화 동양대 교수가 참여한다.

500여 년의 서원 역사에서 여성이 향사에 술잔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이배용 이사장은 지난해 7월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공로를 인정받아 초헌관으로 참여하게 됐다. 도산서원 향사 헌관 선정은 도산서원 운영위원회가 덕행과 학행 등 공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이배용 이사장은 "초헌관으로 첫 술잔을 올리는 도산서원 향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서원의 발전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성과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여성 헌관의 등장이 남녀 화합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향사는 당초 지난 3월 춘향례를 통해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가을 추향례로 연기됐다. 또 신종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제관 규모를 17명으로 대폭 축소해 진행한다.

한편 지난 17일에는 김병일 도산서원장과 서원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제유사들이 모여 술잔을 올릴 헌관들을 임명하고 망기(일종의 임명장)를 작성하는 '차제'가 열렸다. 차제는 본 행사인 향사만큼 큰 이벤트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김병일 도산서원장은 "서원 향사에 여성이 참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선조들의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퇴계 이황 선생은 1561~1570년 도산서당에서 직접 강학을 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사후 4년 뒤인 1574년 제자들이 퇴계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을 새로 짓기 시작해 1575년 완공됐다. 같은 해 선조로부터 도산서원 현판을 사액받고, 조선 성리학의 중심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도산서원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로 불리는 한석봉이 썼다. 도산서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상덕사(보물 제211호)에는 퇴계와 제자 월천 조목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도산서원은 여성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데 앞장서고 있다. 향사는 2000년대 말 전국 서원 최초로 3일 일정을 2일로 단축했고, 야간 봉행을 주간 봉행으로 변경했다. 또 올해부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반 관광객도 상덕사를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했고, 서원에 모셔진 위패에 인사를 올릴 수 있는 '알묘'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금녀의 구역인 상덕사는 2002년 여성에게 개방됐다.

알묘는 그 동안 연중 정알(正謁, 음력 1월 5일), 향알(香謁, 음력 1, 15일), 춘추향사, 내부행사, 외부인사 방문 등이 있을 때 진행했다. 2002년부터는 지정된 남성 선비에게만 알묘 기회를 제공하던 것을 여성에게도 허용하는 등 향사 전 과정에 관람객 참관을 허용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기사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537410



15.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