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고전·전통엔 AI가 대체 못하는 정신 깃들어… 역사서 삶의 지혜 찾아야”

관리자 2021.10.13 17:32 조회 353
▲  사진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 ‘역사에서 길을 찾다’ 펴낸 이배용 前이화여대 총장

“역사 잊은 민족에는 미래 없어
한지 유네스코 등재 추진나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역사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코로나19로 예측이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 전통과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역사학자 이배용(아래 사진) 전 이화여대 총장이 최근 출간한 ‘역사에서 길을 찾다’(행복에너지)를 펴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전과 전통에는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없는 영혼, 따뜻한 가슴,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찰 7곳과 서원 9곳을 유네스코 인류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이 전 총장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일에 나섰다.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추진단을 이끌고 있는 것. 전국 한지장을 찾아다니고, 한지장-학자-지자체 등을 연결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전 총장은 먼저 한지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751년 석가탑에 넣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싼 비단 보자기는 삭았지만 종이는 그대로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6건 중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13건이 전통 한지를 사용했다. 한지는 1000년을 견디는 종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화지는 2012년, 중국 선지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더 우수한 한지는 아직 오르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를 누군가 총대를 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주축이 돼서, 2009년 사찰 7곳과 서원 9곳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킨 뒤, 한지 관련 학계·문화계 사람들이 이 전 총장을 찾아온 이유다. 이에 그는 지난 4월 한지 추진단을 결성, 문경·안동·전주 등 한지장을 돌고, 두 달에 한 번씩 학술포럼을 열며, 등재를 위한 기초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6년 등재가 목표다. 그는 “한지장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눈물겨운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가내 수공업이다 보니 단가는 비싸고 대량생산도 어려운 데다 판로가 없다”며 문화유산 등재와는 별개로 “지자체의 발령장, 감사장, 초등학교 교과서 앞뒤 장을 한지로 쓰는 식으로 생활 속에서 한지를 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찰, 서원에 이어 한지로 이어지는 작업은 결국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그의 평생 철학이 반영된 일이다. 그는 “역사는 과거의 시작과 결말, 끝난 것을 다루기 때문에 지혜가 있다”며 이번에 펴낸 책 ‘역사에서 길을 찾다’를 관통하는 ‘역사가 주는 메시지’를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지나치고 무리하면 화를 자초한다. 둘째, 아무리 좋은 능력도 인연으로 만나야 한다. 셋째,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긍정의 힘을 봤다”는 그는 “준비 없이는 미래가 없다”며 “역사에서 그 준비를 위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고전을 무엇일까. 그는 ‘난중일기’와 ‘징비록’을 꼽았다. “위기관리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여러 위기를 극복한 애국심과 지혜가, ‘징비록’에는 반성이 있습니다. 바로 앞서간 수레바퀴가 넘어지는 걸 보고도, 자기 수레바퀴를 못 고치면 또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