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음속 담아 둔 여행지가 있었다.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이다. 대전에서 썩 가깝지도 않지만, 선뜻 전통문화 서원 답사에 동행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미뤄둔 곳이다. 다행스럽게 설 연휴에 동행하자는 사람이 생겼다.들뜬 마음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때아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뜻밖이었다. 일기예보에서 설 연휴 동안에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릴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 상태였는데 비가 내리다니. 겨울비도 여행의 설렘을 막지는 못했다.일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경주 옥산서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출발 덕분에 고속도로는 명절 답지 않게 한산했지만,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차량은 늘어나고 비가 진눈깨비가 되어 차 창문을 스친다. 진눈깨비마저 일행을 반기는 듯했다.
옥산서원에 이르자 눈발은 멈췄지만 서원 앞 천변에서 불어온 황소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귓불 사이로 스친 매서운 칼바람은 평소 숭모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뵙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다.
옥산서원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년) 경주 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은 1574년에 사액(賜額)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 하나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 하던가. 필자는 지금 서서 하는 독서를 하련다. 옥산서원 입구에 들어서니 역락문(亦樂門)의 현판이 눈에 확 띈다. 논어에 나온 두 번째 구절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라"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를 압축한 현판이다. 이 글귀 하나만으로도, 당시 회재 선생이 학문적 우정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역락문을 지나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 구인당(求仁堂)에 들어서니, 처마에 걸린 옥산서원(玉山書院) 편액이 확연하게 들어온다. 사액서원답게 흰 바탕에 검은 글씨체이다. 이 현판은 원래 만력(萬曆) 갑술년 당시 문신이자 명필가 이산해가 쓴 것이었다. 하지만 기해년 화재로 소실된 바람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 현판을 다시 쓴 후 그 이유를 고스란히 남겨 놓아 이채롭다.
서원의 강학 공간 구인당(求仁堂) 주변으로 무변루(無邊樓)와 기숙사로 알려진 민구재(敏求齋)와 암수재(闇修齋)의 건물이 있다. 특히 유생들의 휴식 공간 무변루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이 일품이다. 무변루는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유래된 것으로 서원 밖 계곡과 산이 경계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누각(樓閣)이다. 그야말로 자연의 풍경을 안으로 빌려온다는 차경(借景)의 멋이다.
▲옛 유생들이 건너 다녔다는 나무 다리. ⓒ 김병모
옥산서원 옛 유생들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신도비를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바위 사이에 놓인 나무 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고봉 기대승이 짓고 문장가 이산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신도비는 후대에 서원 안쪽으로 옮겨져 그 바위에 흔적만이 남아 있다. 역사는 이유 없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명종 때 을사사화나 양재역 벽서 사건 등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회재 선생의 신도비가 옮겨져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강학의 공간 구인당을 뒤로 하고 돌아서기 서러워 삭풍을 맞으며 담장 너머로 고개를 쭉 내밀고 서원 안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기숙사 민구재(동재)와 암수재(서재)에서 일찍 깨어난 유생들이 계곡 맑은 물에 씻은 갓 끈을 고쳐 매고 무변루 마루턱에 걸터앉아 못다 이룬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옥산서원 공간에서 이와 같은 향학(向學)의 열기로 회재 선생의 학문이 성리학의 선구가 되어 퇴계 이황에 이르려 학문적 꽃을 피워 우리 삶의 지표가 된다.
마침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옥산서원의 전통은 어떤 세파(世波)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날 자랑스러운 K-문화로 이어진다. 만약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 중 어느 한 곳을 소개하려거든 순천 선암사로 안내하고, 한 지역을 소개하려거든 경주의 안내를 제안했던 전(前) 문화재청장(국가유산청장)의 말이 생각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만약 필자에게 경주를 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슴없이 옥산서원부터 안내하고 싶다.
출처: 오마이뉴스 김병모